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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와 감정,정신 건강

감정을 억누르면 전전두엽이 피곤해진다

by 꼬미야~ 2025. 6. 21.

‘괜찮아’라는 말이 진짜 괜찮은 걸까?

“참는 게 이기는 거다”, “화를 내면 지는 거야”, “감정은 드러내지 않는 게 어른이지.”
우리는 어릴 때부터 감정을 드러내는 것보다 억누르고 참는 것이 미덕처럼 여겨지는 문화 속에서 자라왔습니다. 말하고 싶어도 삼키고, 울고 싶어도 꾹 참고, 웃고 싶을 때도 주변 눈치를 보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일상. 그러나 이런 ‘감정 억제’는 단지 성격이나 태도의 문제가 아닙니다. 뇌 입장에서 보면, 감정을 누르는 건 마치 계속해서 급경사를 브레이크 없이 내려가는 것과도 같습니다. 특히 감정의 조절과 판단을 맡고 있는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은 감정을 억누를수록 더 많은 에너지를 쓰며, 과도하게 긴장하고 피로해집니다. 이 글에서는 우리가 감정을 억누를 때 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전전두엽이 왜 지치게 되는지, 그리고 감정을 건강하게 다루기 위해 어떤 태도가 필요한지를 뇌과학적으로 풀어보겠습니다. 억누른 감정은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결국 뇌 어딘가를 계속해서 두드리고 있었던 것이죠.

 

목차

 

감정을 억누르면 전전두엽이 피곤해진다
감정을 억누르면 전전두엽이 피곤해진다

 

1. 감정을 억누르는 뇌의 작동 방식

감정은 생존을 위한 뇌의 반응 중 하나입니다. 슬픔, 분노, 두려움, 기쁨 같은 감정은 외부 자극에 대해 뇌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신경 신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감정을 표현하는 대신 억누르기로 선택할 때가 많습니다. 이때 뇌는 어떻게 반응할까요?

가장 먼저 작동하는 곳은 **편도체(Amygdala)**입니다. 편도체는 감정을 감지하고 빠르게 신체에 반응을 전달하는 역할을 합니다. 누군가 내게 무례한 말을 하거나 불쾌한 표정을 지었을 때, 편도체는 즉각적으로 ‘화가 나’라는 신호를 보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순간 화를 내는 대신 ‘참아야지’, ‘괜히 말을 꺼내면 분위기만 안 좋아져’라고 생각하면서 억제합니다. 이 억제의 순간에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이 작동합니다.

전전두엽은 뇌 앞부분, 이마 뒤쪽에 있는 부위로 감정을 조절하고 판단하는 고등 기능을 담당합니다. 즉, 편도체가 감정을 휘몰아칠 때 전전두엽은 그 감정에 브레이크를 걸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죠. 하지만 감정을 억누르는 일이 잦아지면 전전두엽은 지속적으로 높은 수준의 인지 통제 작업을 해야 합니다. 한 번의 억제가 아니라, 하루에도 수십 번 반복되는 억제는 전전두엽에게 과도한 에너지 소모와 피로를 안겨줍니다.

이처럼 감정을 억누르는 건 단순한 ‘인내심의 문제’가 아니라, 뇌의 에너지 자원을 한쪽으로 집중시키는 고강도 작업입니다. 전전두엽은 애써 감정을 누르고 있지만, 동시에 피로와 스트레스에 점점 더 민감해지며 기능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결국 감정을 억누르는 일이 반복되면, 전전두엽은 감정 조절 능력을 상실한 채 감정 폭발이나 무기력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2. 감정을 눌러둘수록 전전두엽은 빨리 지친다

전전두엽은 뇌에서 가장 ‘이성적’인 부위입니다. 문제 해결, 계획 수립, 충동 조절, 공감, 도덕 판단 등 인간다운 사고와 행동을 조율하는 중심입니다. 하지만 이성적인 사고에는 높은 에너지가 요구되며, 특히 감정을 억제하는 작업은 다른 어떤 인지 활동보다 많은 뇌 자원을 필요로 합니다.

특히 부정적인 감정일수록 억제에 더 많은 에너지가 들어갑니다. 분노, 슬픔, 불안 같은 감정은 본능적으로 표현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억누르려면 뇌는 두 배 이상의 힘을 써야 합니다. 이때 전전두엽은 편도체의 과잉 반응을 진정시키기 위해 지속적인 억제 신호를 보내야 하고, 그 결과 신경 회로는 빠르게 지치게 됩니다.

문제는 전전두엽이 피로해지면 그 영향을 뇌 전체가 받는다는 것입니다. 전전두엽이 감정 조절에 지쳐버리면, 다른 기능들—집중력, 기억력, 문제 해결 능력까지 동반 저하됩니다. 그래서 감정을 많이 억누른 날일수록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도 기분이 축 처지고, 뭔가에 쉽게 짜증이 나고, 작은 실수에도 과민 반응을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억누른 감정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전전두엽이 통제에 실패하면, 억눌렀던 감정은 다시 편도체로 넘어가고, 더 큰 폭발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소위 말하는 ‘감정 폭발’이나 ‘예기치 않은 분노’는 억제의 실패가 누적된 결과입니다. 감정은 덮어둘 수는 있어도, 해소되지 않으면 결국 뇌 안에서 부메랑처럼 되돌아오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3. 감정을 억누르는 습관이 뇌와 몸에 주는 장기적 영향

감정을 반복적으로 억누르는 사람은 어느새 ‘표현하지 않는 것이 편하다’는 생각에 익숙해집니다. 하지만 뇌는 절대 이 과정을 ‘편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전전두엽은 계속해서 감정을 조절하려고 시도하지만, 그 작업이 반복되면 신경 회로가 점점 둔감해지거나 반대로 과민해집니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대표적인 문제는 감정 회피와 감정 둔감화입니다.

감정 회피란, 감정이 올라오는 걸 스스로 인식하지 않으려는 뇌의 전략입니다. 슬픈 일이 생겨도 “괜찮아”라고 넘기고, 화가 나도 “그냥 피곤한 거야”라며 감정을 분석하지 않게 되지요. 감정이 해석되지 않으면 해마는 그 상황을 미해결 상태로 저장하고, 해석되지 않은 감정은 편도체에 의해 반복 호출되며 불안정한 상태로 남게 됩니다. 이때 전전두엽은 계속해서 그 호출을 억제하려고 노력하게 되니, 피로의 악순환이 이어지게 됩니다.

또한 감정 억제는 몸에도 영향을 줍니다. 전전두엽과 자율신경계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감정을 억누르면 교감신경이 항시 긴장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이로 인해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근육이 경직되며, 위장 활동이 억제되고, 수면의 질도 떨어집니다. 감정을 참을수록 몸은 더 지치고, 뇌는 더 민감해지며, 결국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만성적인 피로감과 무기력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감정을 억누르는 생활을 오래 지속하면, 전전두엽의 신경망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전전두엽의 탄력성이 떨어지면 감정뿐 아니라 일상적인 사고와 선택에도 영향을 주게 되며, 감정 기복이 심해지거나 충동 조절이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즉, 감정을 눌러두는 일은 뇌의 중요한 중심축 하나를 서서히 마모시키는 일인 셈입니다.

 

4. 전전두엽을 지키는 감정 표현의 기술

그렇다면 우리는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요? 감정을 그대로 내뱉는 것도 문제지만, 억누르는 것은 더 큰 부담을 뇌에 지우는 일입니다. 중요한 건 ‘무조건 억제’나 ‘무조건 표현’이 아니라, 뇌가 감정을 소화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다루는 습관입니다.

첫 번째는 감정을 정확하게 이름 붙이기입니다. “짜증 나”라고 뭉뚱그리지 말고, “나는 지금 무시당했다고 느껴서 속상해”처럼 감정의 뿌리를 구체적으로 인식해 보세요. 이 작업은 전전두엽을 활성화시키고, 편도체의 반응을 줄이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습니다. ‘감정을 언어로 정리하는 행위’는 뇌 입장에서 감정을 처리 완료된 정보로 간주하게 만들며, 억제보다 훨씬 적은 에너지로 감정을 다룰 수 있게 합니다.

두 번째는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안전한 통로를 찾는 것입니다.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 감정을 기록할 수 있는 일기, 감정을 전환할 수 있는 활동(운동, 예술, 명상 등)이 필요합니다. 표현은 단지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 에너지를 밖으로 배출하는 모든 행위를 포함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전전두엽은 감정 조절 기능을 회복하고, 뇌 전체의 균형을 되찾게 됩니다.

세 번째는 감정을 수용하는 태도입니다. 어떤 감정이든 느끼는 건 자연스러운 반응이며, 그 감정을 느낀 자신을 탓할 필요는 없습니다. 전전두엽은 감정을 억누를 때보다 감정을 수용할 때 더 유연하게 작동합니다. "나는 지금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구나"라고 인정하는 태도만으로도 뇌는 통제를 느끼고 안정되기 시작합니다.

마지막으로, 감정 표현은 ‘어른답지 못한 행동’이 아니라, 오히려 뇌를 성숙하게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전전두엽은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감정을 이해하고 조절하며 표현하도록 진화해왔습니다. 감정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강한 사람이며, 뇌 건강을 지키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정리하자면, 감정을 억누르는 것은 단지 마음을 다잡는 일이 아니라, 전전두엽에게는 고된 업무입니다. 감정을 계속해서 누르다 보면 전전두엽은 피로해지고, 결국 감정 조절 기능 자체가 약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감정은 표현되고, 해석되고, 나눠질 때 비로소 뇌에서 정리됩니다. 감정을 다룰 줄 안다는 것은 뇌를 아낄 줄 안다는 뜻이고, 결국 자신을 지키는 가장 따뜻한 지능입니다. 오늘 당신의 뇌가 조금 덜 피곤하기를 바라며, 그 감정, 조금만 말로 꺼내보는 건 어떨까요?